2012년 8월 24일 금요일

대한민국 - 경제와 교통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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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경제입니다.

 

 

 

[편집] 개관

 
 
 
 

한강과 반포교, 여의도의 63빌딩은 서울과 한강의 랜드마크들이다.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 그래프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관료 양성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4.19 혁명으로 세워진 장면 정권에 의해 기존에 양성된 경제관료를 중심으로 경제 개발 계획이 준비되었으나 5·16 군사정변 발발로 실행되지 못했다. 1973년 이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발전 정책으로 철강, 전자, 조선 산업 등이 크게 발달하였다.[61]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혼합자본주의 체재를 택하고 있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고속 경제 성장으로 중화민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로 불렸다. 1997년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사건을 겪었으나, 빠르게(2년 만에) 회복했으며 김대중 정부는 이를 해결했음을 선언했다. 그 후 노무현 정부의 꾸준한 경제 개혁을 통해 2007년까지 매년 백억 달러 이상의 경상흑자와 평균 4%대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명목 국민소득 2만 달러, 실질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를 이루었다.



2010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자료에 따르면 한국PPP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2만 9,350달러이며 이것은 세계 40등 수준이다. [62] 2007년 골드만삭스는 대한민국이 2050년, 브릭스+넥스트 일레븐+G7 1인당 명목 GDP가 90,294 달러가 되어 91,683달러인 미국에 이어 주요 경제국 중 2위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63] 대한민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넥스트 일레븐 경제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아주 부족한 국가적인 특수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시켜 왔는데,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를 세웠으며, 천연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수출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며,[64]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국, 미국, 일본, 대만,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다.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 백색가전의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0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65]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반면에 기업발전에 따른 외부자본조달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간 이해상충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경우 지배구조가 계열사간 피라미드 및 순환식 소유구조에 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현금권과 통제권 간의 상당한 괴리를 가져와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영권 행사에 따른 사적 경영권 혜택이 과도하여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고, 주요 산업으로는 조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산업은 2008년 기준 세계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섰으며[66], 전자 산업은 삼성전자와, LG가 있다. 자동차 생산력은 세계 5위[67]이며,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68] 최근 로봇, 친환경 에너지 등의 미래형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또한 늘리고 있다. 반면, 국가경제 발전수준에 비해 서비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며, 발달수준도 미흡한 편이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내의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자 기업들은 임금이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중국에 진출해있는 대한민국 기업이 많으며, 베트남, 타이, 인도네시아동남아시아에도 많이 진출해 있다.



최근에 중앙유럽 국가들이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여 관세가 철폐되면서 중앙유럽으로 진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북한의 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기업도 늘어났으나, 최근의 남북 관계 경색으로 인해 사업은 축소되었고 왕래가 제한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7%성장과 10년 후 4만$ 소득, 세계 7대 선진국을 이루겠다는 목표(이른바 '747 공약')를 내세우며 출범했으나, 미국발 국제 금융 위기나 무모한 고환율 정책을 시행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불신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물가, 환율, 대출금리가 대폭 상승하고 주가가 3년 4개월만에 세자릿수로 하락해 각종 경제지수가 악화되었다.[69]


이명박 정부 들어서 대한민국 경제는 외환위기 때와 맞먹는 큰 타격을 입어 '경제위기'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하지만 2009년 3분기 환율이 1220원대 후반으로 하락하고 코스피도 1500선을 돌파해 경기가 호전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존 립스키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모건스탠리 리서치의 샤론 램 부사장 등 외국 경제전문가들이 점차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고 조심스런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내외 여러 기관들은 2009년 성장률을 0%대로 전망하고 있고 2010년 성장률은 4~5%대로 전망하고 있으나 일부 잠재적 위험 요인이 있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은행이 2010년 성장률이 6.1%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70] [71][72]



한편, 2010년 3월 7일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빈곤층 가구 수는 3년간 37만 가구가 늘어난 305만 8000가구이며, 인구는 약 700만명에 달해 소득계층 구조가 중산층 중심의 안정적인 항아리형에서 빈곤층 중심의 피라미드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73]




[편집] 자유무역협정




대한민국은 싱가포르, 칠레, 콜롬비아,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이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발효되고 있다.



2007년 4월 2일,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었으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EU 다음으로 거대한 자유무역시장을 갖게 된다. 현재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양국 의회의 비준 동의를 받는 차례만 남았으나, 미국에서는 재협상 논란, 대한민국에서는 졸속 비준 논란이 이는 등[74] 비준 동의안 처리에 적지 않은 난항을 겪고 있다.


이명박 정부참여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던 EU와의 FTA 협상을 계속 추진하며 개방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개방 정책에 대해 일부에서는 '금융위기로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과 대외 의존정책의 한계가 드러났음에도 정부가 개방을 더 가속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75]





[편집] 가계부채



대한민국의 가계부채는 1999년 ~ 2001년 급증, 2002년 ~ 2004년 감소, 다시 2005년 ~ 2007년 까지 급증,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로 그 증가세가 지속되어 2011년 처음으로 가구당 가계부채가 5000만원을 넘어섰다. 이는 자산 증가보다 부채 증가가 더 빨라짐에 따라 빚을 갚을 능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76][77]



특히 소득이 적을수록 부채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2010년 소득 하위 20%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2009년 보다 68.2% 급증한 279.5%에 이르러 소득의 3배에 달하였다. 이는 소득이 적은 20, 30대 가구와 저소득층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보여주고있다.[77] 이는 저축은행들이 건설업체의 잇따른 부도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해지면서 금리가 높은 가계대출 비중을 늘림과 더불어[78] 전월세값을 포함한 물가의 급등과 교육비 지출에 따른 ‘생계형 대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77]



축소된 가계부채 상환 능력에 대하여 이명박 정부는 고소득층의 가계 빚이 가계부채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빚을 갚을 능력이 양호하며 자산불평등도 외국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이유로 당장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 30대와 저소득층의 가계부실이 본격화되면 미국이나 유럽처럼 ‘가계부채 대란’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77]

 

 

[편집] 공공부채



정부와 공기업의 공공부분 부채는 2011년 3분기 말 한국은행이 파악한 것만 789조 3600억 원으로 1년 만에 9.2% 급증했으며 이중 공기업의 부채는 1년 만에 14.4%나 급증한 36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보금자리 주택이나 4대강 공사 등 국책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사채 발행 등으로 마련한 결과로 보고있다.[79]



[편집] 소득 양극화 지수, 지니 계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소득 양극화 지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6년 2.12%, 2008년 2.05%, 2010년 0.89%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조금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80]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03년 기준으로 증가세가 2009년 5.65%, 2010년 2.73%으로 계속 높게 나타났다.[80] 공적연금 지출은 30개국 중 29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30개국 중 30위로 나타났다.[81]




[편집] 산업




1960년대까지의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은 농업에 의존하였다.


 1963년 이후 집권한 박정희는 공업화,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농업인구는 격감하여
1970년 1천4백42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4.7%였고,
2010년 기준 한국의 농업인구는 3백2만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를 차지, 10%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농업인구의 고령화 까지 진행되면서 나중에 식량위기가 올 가능성이 재기 되고 있다.





하이닉스DRAM. 2008년도 제2사분기의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과 하이닉스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82]





한국 공업의 역사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부터 제철, 제련 공업이 발달하였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수탈을 목적으로 근대적인 공업 시설이 건립되었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유입되었다. 일본 자본의 유입에 맞서 국채 보상 운동이 자발적으로 확산되었고 1920년대에는 김성수는 자본을 투자하여 경성방직, 경성직류 등 방직과 면 공업을 육성하여 민족자본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1923년부터는 조만식, 안재홍, 김성수 등에 의해 물산 장려 운동이 진행되어 국산 공업품을 활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공업으로 일변화 된 한국의 공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의 공업 수준은 미미했으나, 1960년대 이후 출범한 제3공화국 정권은 경제성장의 기반으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60년대에는 수공업, 수제품 공업, 기술, 근로자 파견 위주로 진행되었고, 식료품과 담배, 섬유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입 대체 산업이 발달하였다.


70년대에는 중화학 공업,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공업정책이 진행되었다. 1980년대 이르러 섬유, 의류 산업뿐 아니라 전자 제품, 건설,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현재는 자동차 제품, 컴퓨터 제품, 광학 제품, 전자 제품, 조선업, 하이테크 산업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업 생산은 국민 총생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다.[83]



대한민국에서 3차 산업은 국민 총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83] 한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외국과의 무역 거래 확대는 서비스업의 발달을 촉진했으며 금융업도 발달해 많은 다국적 기업이 대한민국에 본사 및 지사를 두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투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이로인해 세계 경재위기에 취약하게 되었으며 실제로도 2000년대 중후반부터 세계 금융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편집] 동반 성장




대한민국의 골목 상권은 기업형 슈퍼마켓(SSM), 빵집 등, 프랜차이즈와 대기업의 다양한 분야 시장 독과점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고[84],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선정[85], 대통령이 직접 언급 하는[86] 등 제제가 가해지고있다.

이에 일부 대기업이 속속 사업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87] 기업형 슈퍼마켓 기업은 중소 업체를 사들이는 등 여전히 많은 대기업은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88]




[편집] 교통




이 부분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교통입니다.

고속도로 노선도

 

 

 

[편집] 육상 교통



[편집] 도로

국도 제35호선 우회도로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대한민국의 도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에는 우측 통행을 하며, 자동차 운전석은 왼쪽에 있다. 4,000km에 달하는 31개의 고속도로국도, 지방도 등의 도로가 있어 대한민국의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AH 1노선의 일부[89] 이며 국도 제7호선AH 6노선의 일부이다.


1990년대 이후 민간 자본을 투자한 민자 고속도로와 민자 역사 시설 운영도 진행되고 있는 한편, 공기업 형태의 도로교통공단이 기타 도로·철도 시설의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90]




[편집] 버스

메트로버스 200번 대형차량 (현재 폐선)




전국적으로 버스의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1462만명이다. 과거에는 현금과 함께 회수권과 토큰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며 현금도 대부분 사용가능하나 환승혜택이 없다. 또한 교통카드를 통한 환승할인 혜택 등으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중이다.



또한 이를 통한 도시철도와의 연계를 목적으로 수도권의 버스노선체계는 이명박전직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고 수도권 통합요금제가 수립되게 되었다.


현재 버스 체계는 크게 시내버스시외버스로 나눌수 있으며 시내버스 특정 지역의 면허에 귀속된다. 또한 비교적 작은 지역에서의 운행을 위한 마을버스부산, 서울, 경기도 등에서 운행되는 중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시계를 넘어서면 시계추가요금이 부과되며 서울, 경기도, 인천시내버스는 거리에 따른 추가요금이 부과된다.


시외버스시외버스터미널이나 시외버스정거장에서 주로 승하차가 이루어지며 대부분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지만 가끔씩 사용가능한 노선도 있다.



환경정책에 의해 최근에는 천연가스버스로 교체하는 자치단체가 많으나 최근의 잦은 사고로 인하여 신뢰성이 떨어져가는 상태이다.



또한 현재 자가용이용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하기위해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장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자치단체들이 생기고 있으며 수도권의 도심지역의 혼란이 극심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걸맞는 굴절버스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도입하였으나 대부분 비용문제 등으로 취소되었다.



[편집] 철도

한국철도공사는 시속 300km의 KTX 열차를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의 철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철도광역전철의 총 연장 길이는 3,000km에 달한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철도시설은 1963년 9월 1일 교통부 산하에 철도청을 신설하여 이때부터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였으나 2005년에는 기업체로 전환하여, 공기업의 형태인 한국철도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국유 철도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경의선 철도는 평부선·평의선시베리아 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91]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철도선에는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장항선, 경전선, 경춘선, 충북선, 그리고 전라선이 있다.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수도권지역과 부산지역,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등에서 운행되고 있다. 시내를 운행하는 도시철도를 일컬어 '지하철' 또는 '전철'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4년 8월 15일 처음으로 개통된 수도권지역은 1~9호선과 분당선, 중앙선, 경의선, 경춘선, 인천지하철1호선, 인천국제공항철도, 신분당선, 수인선 까지 총 17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기본요금은 평균적으로 교통카드 이용시 최초 10km까지 1050원, 그이후 5km 초과시마다 100원씩 추가된다. 그러나 민영 도시철도인 신분당선은 기본요금이 1,600원이고 환승요금도 700원이 추가된다. 1~9선과 분당선,중앙선,경의선,경춘선은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한국철도공사 등이 노선에 따라서 운영하고 있으며 타 노선이나 버스간의 기본환승요금도 무료이다.



다만 경기도와. 충남 천안지역을 제외한 충남 아산강원도에서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수도권 전철있는 구역중에서 유일하게 버스<->전철간 환승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서울의 도시철도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약 800만명으로 버스보다 많아 서울시 대중교통의 핵심으로 꼽힌다.[92] 서울도시철도는 인천 도시철도, 인천공항, 김포공항과도 연결된다.



1985년 개통된 두 번째로 큰 부산 도시철도는 총 길이 131.7km에 1호선,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 5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구지하철 1호선, 2호선 2개 노선이 운행되고 대전지하철 1호선 1개노선이 운영, 광주1호선 1개 노선 운행 등 일부 광역시들을 중심으로 도시철도가 계속되어 건설중이다.



요금은 각 지자체에서 따로 규정하여 조금씩 다르다. 복지 정책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무임으로 승차할 수 있다.(부산-김해 경전철은 노인도 유임승차)








대한민국의 도시철도는 대체로 운행 시간이 정확하고 위생환경과 전반적인 이용이 쾌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실내먼지 오염농도가 높고, 출퇴근 시간에 사용자가 많은 일부 역에서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등 개선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의자 등의 내부 자제들을 합성수지로 된 쿠션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이후로 모든 자제들을 불연성 재질로만 사용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어 현재 모든 지하철과 전철에 적용되어 있고 방독이면이나 소화기 등도 잘 비치되어 있다.




이 외에 선로 추락 사고나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현재 수도권지역의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 하였으며[93] 최근에 개통한 부산, 대구, 대전, 광주의 일부 도시철도 승강장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있는 경우가 있고 부산도시철도의 경우 모든 승강장에 안전펜스와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였다.[94]



최근에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도시철도로써 건설비가 많이드는 중전철보다 경전철을 선호하여 전국 각지에서 계획과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편집] 항공 교통



대한민국에는 8개의 국제공항과 7개의 국내선 공항이 대한민국 내외의 항공 교통을 담당하고 있다.



항공교통은 광복 후 1948년 대한민국항공사(KNA)가 설립되어 국내선을, 1954년 이후 국제선을 운항하였다. KNA는 1962년에 대한항공공사로 개칭하고 국영으로 운영되다가, 1969년 한진상사가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개명하고 민영으로 운항되면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8년 제2민간항공사업이 허가됨으로써, 금호그룹아시아나항공과 함께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대한항공은 2007년 기준으로 약 100억 톤의 화물을 처리하였다. 이러한 여객기를 관리하는 대한민국의 대표항공은 인천 국제공항과 김포공항이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은 7년연속 세계최고항공사로 뽑힐정도로 각 항공 시설이 매우 잘 관리되어있다

 

 

 

[편집] 해상 교통


 

 

 

[편집] 고용



[편집] 청년 실업 문제와 비구직 니트족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률은 2011년 4월 8.7%, 9월 6.3%, 2012년 1월 8%였다.[95]


이 중 지속적인 실패 경험으로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비구직 니트족은 1995년 26만 9천명, 2000년 57만 4천명, 2005년 87만 3천명, 2010년 99만 6천명, 2011년 2월 128만 4천명으로 증가하고있다.


졸업 후 5년이 지난 해 청년 니트족 비율의 2008년 OECD 국가 비교에서는 36.%로 1위였다. 원인은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은 동시에 대학 진학을 당연시 하는 문화로 대학 진학률이 가파르게 상승하여 고용 시장의 수요 공급이 불균형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속적 실패 경험으로 인한 니트족의 증가는 은둔형 외톨이 나아가 우울증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2011년 부터 취업 성공 패키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2012년 청년 실업 문제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발표하고 이 프로그램의 예산을 4배 증가 시켰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청년이 상당수이며 청년에게 연결되는 일자리 종류는 크게 변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은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요구는 정부의 정책적 적극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와 청년들의 분노만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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